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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부/한국사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 즉위 과정, 업적

by naridawm 2024.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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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1335~1408)는 고려 말의 혼란을 극복하고 새로운 왕조인 조선을 건국한 인물이다. 그는 군사적 능력과 정치적 통찰력을 발휘해 조선을 세우고 조선 왕조 500년 역사의 초석을 마련했다. 이성계의 조선 건국과 즉위 과정, 그리고 주요 업적을 상세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 건국의 배경

 

고려 말의 혼란

  • 고려는 14세기 후반 몽골 간섭기와 외침(홍건적, 왜구)으로 국력이 약화되었다.
  • 권문세족의 횡포와 부패로 백성들은 고통을 겪었고, 중앙 정치권은 혼란스러웠다.
  • 개혁을 주장한 신진 사대부와 보수적인 기득권 세력인 권문세족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이성계의 등장

  • 이성계는 군사적 능력을 인정받아 고려 말 왜구와 홍건적을 격퇴하며 명성을 얻었다.
  • 그가 활약한 대표적인 전투 : 
    - 황산 대첩(1380년) : 왜구를 크게 격퇴하며 군사적 지도자로서 입지를 다졌다.
    - 홍건적 격퇴 : 몽골과 중국의 혼란기에 침입한 홍건적을 물리쳤다.

 


조선 건국과 즉위 과정

 

위화도 회군(1388년)

  • 고려 우왕과 최영은 명나라와의 갈등 속에서 요동 정벌을 명령했다.
  • 이성계는 이를 반대하며 `4불가론(작은 나라의 무리한 정벌은 패망을 초래한다)`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요동 정벌 도중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려 고려로 돌아왔고, 이를 위화도 회군이라 한다.
  • 회군 이후, 최영을 제거하고 우왕을 폐위하며 고려의 실권을 장악했다.

정치적 기반 마련

  • 공양왕(창왕의 뒤를 이은 왕)을 세우며 명목상 고려의 틀을 유지했으나, 실권은 이성계와 신진사대부가 장악했다.
  • 고려 충신이자 개혁 반대파인 정몽주를 제거하며 반대 세력을 제압했다(1392년, 선죽교 사건).

조선 건국과 즉위

    • 1392년 7월, 이성계는 공양왕을 폐위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웠다.
    • 국호를 `조선`으로 정하고 초대 왕으로 즉위했다.
    • 명나라와 외교적 승인을 받아 새 왕조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태조 이성계의 주요 업적

 

새로운 국가 건설

1) 국호 제정

  • 명나라 황제의 자문을 받아 `조선`을 국호로 확정했다. 이는 고조선의 전통을 계승하려는 의미와 함께 새 출발을 상징했다.

2) 한양으로 천도(1394년)

  •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겨 정치, 경제, 군사적 중심지를 새롭게 설정했다.
  • 한양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지리적 조건과 풍수지리적으로도 이상적인 지역이었다.

유교 중심의 통치 이념 확립

  • 고려의 불교 중심 체제에서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전환했다.
  • 성리학을 통치 철학으로 삼아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하고 관료제를 정비했다.
  • 이를 통해 왕권과 조정의 안정적 기반을 마련했다.

민생 안정과 토지 개혁

1) 과전법 시행(1391년)

  • 조선 건국 전부터 신진사대부와 함께 토지 제도를 개혁해 불법적으로 점유된 토지를 몰수했다.
  • 관리들에게 녹봉 대신 토지를 지급해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경작할 수 있도록 했다.
  • 과전법은 조선의 경제적 기반을 다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문화와 제도의 기틀 마련

  • 새로운 왕조에 걸맞은 법과 제도를 마련하고 유교 문화를 장려했다.
  • 건국 초기 조선의 정통성과 질서를 세우는데 집중했다.

 


태조의 말년

 

제1차 왕자의 난(1398년)

1) 이방원의 반발

  • 이방원은 조선 건국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후계 구도에서 배제되었다. 이방석과 이방번이 세자로 임명되자, 이방원은 군사를 일으켜 이방석과 이방번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2) 태조의 퇴위

  • 이 사건으로 태조는 깊은 충격을 받고 정계에서 물러났다.
  • 왕위를 둘째 아들 `정종(이방과)`에게 물려주고 함경도 함흥으로 떠났다.

함흥으로의 은거

  • 태조는 함경도 함흥에서 여생을 보냈다. 함흥은 그의 출신 지역으로, 고려 시절부터 그에게 충성을 바친 지역이었다.
  • 이곳에서 그는 정치적 혼란을 피하고 은둔 생활을 하며 국가의 상황에 간섭하지 않았다.
  • 그러나 정치적 안정이 되지 않았던 시기, 왕자들과의 갈등에서 비롯된 `함흥차사`의 고사로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 이방원이 보낸 사신들을 태조가 돌려보내지 않았다는 이야기로, 그의 고립과 방황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제2차 왕자의 난(1400년)

  • 태조는 함흥에 머물려 제2차 왕자의 난(이방원과 이방간의 권력 다툼)을 직접적으로 목격하지는 않았으나, 이런한 상황은 그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 결과적으로 이방원이 승리하여 왕위에 올라 `태종(1400~1418)`이 되었고, 조선은 왕권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말년의 죽음

  • 태조는 1408년 함흥에서 7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사후, 그의 시신은 한양으로 옮겨져 조선 왕조의 첫 번째 왕릉인 `건원릉`에 안치되었다. 이곳은 지금의 경기도 구리시에 위치한다.

태조의 말년 평가

  • 태조의 말년은 조선을 건국한 창업자로서의 위업과 달리, 내적 갈등과 비극으로 얼룩진 시기였다.
  • 그는 왕자의 난과 같은 왕권 계승 문제로 인해 정치적 이상과 가문 내 분열 사이에서 큰 갈등을 겪었다.
  • 그러나 이성계가 마련한 기반 위에서 조선은 중앙 집권적 체제를 확립하고, 후대의 태종과 세종 같은 명군들이 등장해 번영을 이루게 된다.

 


태조 이성계의 역사적 의의

 

조선 건국은 단순히 새로운 왕조를 세운 것에 그치지 않고, 중앙 집권적 통치 체제와 유교적 국가 질서를 확립한 대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이성계는 혼란스러운 고려 말기의 상황을 극복하고, 안정적인 기반 위에 새로운 국가를 설계한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그의 업적은 이후 태종과 세종 대에 걸쳐 더욱 발전했으며, 조선은 500년 동안 한반도의 중심 국가로 이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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